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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파헤쳐보기

박정희 정권 요정시대에 일어난 정인숙사건

 

정인숙이라하면 대부분 장년층들이상이 알만하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잊혀지지 않고도 여전히 조명이 되고 있다. 

요정시대의 의미는 정재계 거물들을 단골로 잡기 위해 1백개의 가까운 저마다 곳곳 요정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시대에 박정희 정권 때이었고, 요정들의 관리 중요성이 날로 점점 커지면서 중앙정보부에서 따로 호스티스들을 관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요정들이 재벌들을 모시고 하거나 첩으로 들어가는 대부분이기때문에 돈을 꽤 많이 모을 수 있었다.

 

 

호스티스들이 재벌로 인해 나날이 발전해지고 더욱더 막강해졌는데, 그 중에 재벌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던 정인숙이 있었다. 이 정인숙은 그 시대에 미인상이었던 미모였을 뿐만 아니라 똑똑한 지성을 갖춘 선운각의 에이스로 많은 재벌들 사이에 밀접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일어와 영어를 능통함에 따라 외빈만찬에도 여러번 등장하면서 영향력을 넓히면서 유명세를 탄 것이다. 

 

그 당시에 정인숙에 대해 가장 시끄러웠던 것이 그녀의 아들이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있었다. 

아들에 대한 관심이 나날로 커지면서 누군가 정인숙에게 피살하기로 당한 것이다. 

 

 

피살당시에 1970년 3월 17일 오후 11시 20분경에 서울 마포구 절두산 강변 도로에서  정인숙의 머리와 가슴을 총격받은 채로 발견이 된 것이다. 당시에 같이 있었던 정인숙의 오빠도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고, 괴로워하던 중에 주변을 지나던 택시기사에게 발견을 되면서 극적 구출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인숙의 피살사건에 대해서 경찰에서 적극적으로 수사를 나서야함에도 불구하고 얼버무리면서 빠르게 5일만에 수사를 중단시킨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억울하게 가해자의 누명을 씌운 정종욱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89년에 정종욱이 출소하면서 여전히 동생 정인숙에 대해 정부기관에 의해서 총살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본인의 가족 안전을 위해서 그 당시에 누명을 씌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피살 당시에 총살 각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총살 각도에 따라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총알의 탄환의 크기보다 정인숙의 왼쪽 가슴에 총살 지름이 작은 걸 보면 밖에서 자동차 앞유리로 통과된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운전석안에서 정인숙의 오빠 정종욱이 직접 쐈었더라면 피살 당한 가슴 쪽의 지름보다 더 컸어야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에 정종욱이 살인했다는 증거물이 유력했던 이유가 탄흔 때문이라고 했는데 만약 자동차 안에 있었다면 탄흔이 더 있어야했는데 정종욱만 있던 탄환이 있어서 설득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차 밖에 정인숙에게 총살했음을 확인하는 셈이다. 

 

 

왜 그녀가 정인숙을 살해당해야했을까. 그 이유는 정인숙이 당시 선운각에서 정치, 재계인 유명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 자주 출입이 가능한 에이스로, 최고위층들만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최고위층인의 아들까지 두고 있어서 날로 갈수록 점점 거만해져가는 정인숙이 자신 아들에 대해 친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신변문제로 인해 그녀를 제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이 된다. 

 

 

 

 

그녀의 아들은 지금은 무얼하고 있을까

 

당시 아들이 자라면서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걸었지만, 이듬해에 사망하면서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사진상으로보면 외형상이 확실히 닮은 것 같긴 하다. 

 

정인숙의 피살사건에 대해 누가 쐈는지와 정일권의 친자가 누구인지를 영원히 비밀을 감추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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